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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유럽여행] 여행 국가, 도시별 나의 생각


교환학생 학기중과 교환학생을 마치고나서 여행중인 지금까지, 제가 느낀 도시별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다분히 주관적인 관점이며, 단기간 관광했던 탓에 상당히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가볍게 읽고 넘기시면 될 듯하네요.

거주했던 벨기에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추후에 보강작업을 할 예정이며, 더 깔끔하게 정리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초안에 불과하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고 엄격한 판단은 자제해주세요ㅠㅠ


여행 국가, 도시별 내 생각

<프라하, 잘츠부르크, 비엔나, 쾰른, 프랑크푸르트, 뮌헨, 루체른, 인터라켄, 부다페스트, 파리, 포르투, 런던, 자그레브, 두브로브니크, 암스테르담, 잔세스카스, 하이델베르크, 류블랴나, 블레드, 마라케시, 사하라사막, 아베이루, 바젤,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 코르도바, 세고비야, 톨레도, 마드리드>

찾고자하는 도시는 <Ctrl + F>후 검색

    <독일> 독일은 투박함의 향기를 풍긴다 141225

-         영 프 독. 유럽의 핵심 3국의 대표 지역을 여행했다. 런던, 파리, 뮌헨. 독일이 가장 투박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파리는 세 곳중 화려함을 담당한다면, 런던은 신기함, 창조를 갖고 있다. 독일은 단정하며 튀지 않는 모양새다. 한 낮에 세 도시를 보았을 때, 독일은 가장 화려함이 없어보이는 도시였다. 유명 관광지이건, 쇼핑센터이건 시끌벅적하고 야단스럽고 호화스럽게 꾸민 흔적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베르사유 궁전의 영향을 받았다는 님펜부르크 성을 가보아도 베르사유 궁전과는 비교과 되지 않을 만큼 단순해보였다(물론 베르사유 궁전이 초호화 궁전이었기 때문에 1 1식의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님펜부르크는 상당히 담백한 풍경을 자아낸다).

쇼핑센터를 걸어도-뮌헨 최고의 쇼핑로드였다-건물들이 네모 낳고 튀는 건물이 많지 않았다. 우리가 최고라고 위시하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물론 몇몇 명품가게 및 일반 가게들은 그런 형태를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독일 사람들은 가족을 많이 아낀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성탄전야인 24, 그 많은 크리스마스 마켓과 쇼핑 로드의 가게들이 오후부터 하나 둘 닫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였다면 가장 큰 대목이라 많은 가게들이 늦게까지 가게를 열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25일 가게를 운영하셨다.

일찍 귀가하여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가족 문화의 한 부분일 것이라 짐작했다. 돈보다 가족과 사람을 더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궁금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서유럽 국가들보다 더 개인주의적이고 보다 자본주의에 가까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하는 반성도 해보았다.

-         독일을 영국, 프랑스와 비교한다면 관광지로서의 매력은 그들보다 낮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이상의 차이. 이 나라들보다 볼 만한 장소나 문화가 적은 것이 주 요인이다. 독일은 한 도시에 5~6일 머무르며 관광해도 좋을 도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울러 런던, 파리에 버금가는 대표 관광지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영국, 프랑스를 최우선 유럽여행국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지.

물론, 독일 여행의 백미는 소도시를 찾아다니는 것이라는 사실을 듣기는 했지만.

     <독일물가가 저렴하고사람들이 친절한 도시 141220

-         독일의 물가는 영국프랑스 그리고 심지어 벨기에와 견주어도 더 낮은 수준이라고 판단됨체감상일지 모르지만나만의 생각은 아닌듯 함같은 구운 밤을 판매해도 스위스는 3.4프랑 이상을 요구하지만 독일 쾰른에서는 2유로에 판매. 1000원 이상의 차이가 남샌드위치를 예로 들더라도 더 저렴한 가격임독일의 물가 관리 방법과 그 실효성을 배우고 알고 싶음

-         독일에서 길을 물었던 여러 번의 시도 중 친절히 대답해주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나머지의 경우가 불친절하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건 개인차에 지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독일인이 얼마만큼 미소를 띄었는가가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아울러 생각보다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남물어봤던 중 한 번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 영어로 대답을 해주었음.

-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내가 방문했던)에서 빵이 식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함특히 샌드위치 문화가 우리나라와 다르게 상당히 발달된 것으로 관찰됨이 사람들의 식문화중 한가지는 길거리를 걸어다니며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 혹은 길거리에 서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한 끼 해결.

    <프라하, 체코> 저렴한 물가에 풍경이 더해지다

-         체코 프라하. 유럽에서도 물가가 굉장히 낮은 편에 속하는 나라다. 싼 값에 호스텔을 예약할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비교적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들이 저렴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렴이라는 단어를 쉽게 붙일 수 있을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아무튼 프라하는 사랑스러운 물가에 아름다운 풍경이 더해졌다. 프라하 성을 중심으로 주황색 지붕이 펼쳐진 풍경이 굉장히 멋드러진 모습을 뽑내고 있었다. 바로크, 로코코, 르네상스 등 다양한 양식의 혼재가 오히려 개별적이면서도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하는 감초 역할을 했다. 역설. 개별 요소를 뜯어보면 분명 다르지만, 전체를 모아놓으니 그 또한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다양함이 오히려 프라하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으며, 이 미()가 곧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프라하를 찾는 이유가 되는 것을 테다.

프라하가 이 정도로 사랑받는 유명 관광지일 줄이야. 하지만 며칠 있어보니 수긍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멋진 그림 같은 프라하를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여 나는 독일의 그 모든 도시에서의 기억보다, 단 한 곳. 이곳 프라하에서의 기억이 더욱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아울러 혼자가 아닌 둘이서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다른 맥주와 비교당하길 거부하는 프라하의 흑맥주. 이 모든 것이 내 기억 속의 프라하를 아름답게 만들어준 요소들이다.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스위스 오마주, 눈의 낭만을 맛보다 141231

-         오스트리아는 로망을 가지고 있던 도시이다. 어떤 무엇인가를 동경하는 마음. 실체를 분명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동경의 도시였다. 왠지 음악이 흘러 나올 것만 같고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음악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그렸었다.

아쉽게도 내가 방문한 계절은 겨울. 당연히 꽃들은 동면중이었다. 자취를 감추었다. 흐드러지게 만발한 꽃들을 기대할 수 없었다. 대신에 다른 꽃이 반겨주었다. 눈꽃. 잘츠부르크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내린 눈은, 그 전부터 쌓여있던 눈과 합쳐져 잘츠부르크를 하얗게 도배해 놓았다. 오늘 잘츠부르크를 떠나는 이 순간까지도 이 곳은 하얀 세상 그대로였다. 어제 폭설이 내려 더욱 그랬다.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단색의 깔끔하고 단정한 눈꽃이 이 도시를 덮고나니, 이 숨막히는 통일감에서 오는 묘한 낭만이 느껴졌다. 형용할 만한 것이랄건 없었다. 온통 하얀 색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거기서 묘한 미()가 흘러나왔다. 괜스레 혼자 걷고 있던 잘츠부르크가 둘이었다면 매우 기분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사로잡혔다.

호엔잘츠부르크와 운터베르크 산이 잘츠부르크의 가장 인상 깊은 명소라 생각하는데, 아쉽게도 설경의 진수인 스위스를 다녀온 경험 때문에, 나에게는 스위스 오마주에 그쳤다. 스위스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분명 이 곳은 더 아름다웠을 터.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로 시작과 끝을 알린다. 게다가 음악이라는 공통요소로서 사운드 오브 뮤직이 힘을 더한다. 이 점이 바로 이 도시에 많은 사람들이 동경을 품는 요인이 아닐까. 음악이라는 낭만과 아름다운 풍경이 하나되는 도시, 이 낭만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낭만 2.0이라 말해야 할까.

    <비엔나, 오스트리아> 150102

-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천재 음악가들이 출생한 국가의 수도. 아울러 구스타브 클림트, 에곤 쉴레 등의 미술가를 배출해 낸 예술 중심지의 수도.

비엔나를 처음 맞이한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도시의 모습이 마치 파리의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화창할 때의 파리의 풍경은 그 여느 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이곳 비엔나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 만큼 비엔나는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파리와 같이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되지 못한 이유에는(물론, 비엔나도 유명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파리 런던 등과 같이 최고로 손꼽히지는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파리의 개선문,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처럼 상징물로 여겨질 수 있는 관광지가 없는 탓일 것이다. 호프부르크 왕궁, 쇤부르 궁전, 미술사 박물관 등 매우 가치있는 관광명소가 있기는 하지만 파리와 직접 대면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비엔나가 파리의 턱 밑까지 다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구스타브 클림트란 작가의 존재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의 키스라는 작품. 벨베데르 궁전을 가야만 하는 이유 한 가지를 뽑아보라면, 고민않고 클림트의 키스를 보아야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글을 쓴 것을 보았다.

벨베데르에 가기 전까지 그가 누구인지, ‘키스라는 작품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두 눈으로 그 작품을 본 이후, 그는 나와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그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그를 내게서 놓아줄 수 없다.

황금, () 그리고 작은 패턴의 반복.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그림 안에 평면과 입체감이 동시에 숨쉬고 있다는 것. 황금으로 수 놓아진 이불은 언뜻 평면으로 보이나, 키스를 하고 있는 남녀의 얼굴은 입체감을 갖고 있다. 이 둘의 대비가 한 그림 속에서 황금과 합치될 때의 감동은 나의 어리숙한 필력으로 담지 못하겠다. 기념품 속의 키스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동은 이 작품을 눈으로 마주할 때야 비로소 느껴질 것이다.

    <쾰른, 독일> 150102

-         쾰른에서 1박을 한 목적은 레버쿠젠의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함이었다. 쾰른 대성당의 존재는 전혀 모른채로 쾰른에 입성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다는 성당의 존재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검은 색채로 뒤 덮인 거대한 성당의 모습은 웅장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건축물이었으니까. 물론 성당내부도 상당히 커 다른 성당에서 느꼈던 것을 조금 웃도는 관심이 생기기도 했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쾰른이란 장소는 그저 축구 한 경기를 보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했을 뿐이었기에, 쾰른 대성당만 관람하고 도시를 빠져나왔다. 그래서 내게는 쾰른은 쾰른 대성당을 갖고 있는 도시로 남게 될 것이다.

    <프랑크 푸르트, 독일> 150102

-         현대 독일의 심장. 경제의 중심지 프랑크 푸르트. 유럽하면 떠올리는 중세 시대의 풍경과 오래된 건물들이 낭만적으로 펼쳐진 그런 그림을 찾아 볼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현대 독일의 발전 상황과 독일 경제를 움직이는 높은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장소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럽여행의 초기 목적인 멋진 유럽의 풍경을 보고 싶다면 이 곳은 그리 안성맞춤인 장소가 되지 못한다. 아주 작은 규모로 옛스러운 풍경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괴테의 출생지로 알려져있어 괴테하우스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 곳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하우스, ~박물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자그마한 발자취에라도 취하고 싶은 광팬이라면 모를까. 나 같은 일반인이 뇌리에 깊이 새길만한 특별한 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독일 경제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라도 볼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이마저도 구경하지 못했는데. 이런 연유로 프랑크푸르트는 예상과 달리 무척 고리타분했고, 오랜 시간 걷기만 했던, 방문을 후회하는 도시로 전락해버렸다.

    <뮌헨, 독일> 150102

-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축구 클럽이 알고 있는 뮌헨의 전부. 3일 동안 뮌헨에 머무르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확실히 앞선 쾰른, 프랑크푸르트 보다 훨씬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갖고 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웠다. 독일이라하면 유럽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달한 국가이면서 유럽연합을 이끄는 실질적 수장. 세계 최고의 경제국가로 굳건한 나라아니던가. 나는 그에 비할만한 문화국가로의 독일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뮌헨에서도 이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생각해보아도 쉽사리 받아드리기 어려웠다(후에 베를린에 다녀온 형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베를린이 상당히 많은 역사 유물과 관광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베를린을 가보지 않고 쉽사리 독일 평가해서는 안되겠다 깨달았다).

유감스럽게도 다하우 강제수용소, 님펜부르크 성의 내부를 들어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분명 나에게는 불운까지 겹친 아쉬운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스위스> 150102

-         목재 특히 통나무로 지은 집과 만년설이 뒤덮인 산이 보여주는 조화. 이런 풍경은 알프스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치가 아닐런지. 이런 이유로 북유럽에 더욱 가보고 싶어젔다. 비슷한 추위와 목재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다른 느낌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솟구친다.

목재집, 통나무집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느낌일까. 왠지 북유럽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특히 짙은 갈색이 야기하는 마음 속깊은 곳에 내재한 감정. <상실의 시대>에서 받은 이미지를 체르마트에서 일부 시각화 시킬 수 있었다. 차가운 공기와 하얀 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 따뜻함이 생성되는 것만 같다. 복잡하고 앞 뒤 안맞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루체른, 스위스> 150102

-         이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감을 주는 관광지가 또 있을까. 내 머릿속의 지우개로도 삭제하지 못할 그 곳. 루체른. 이곳을 다시 한 번 방문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나 혼자 이 아름다운 곳을 즐길 수 없다는 미안함과 다시 한 번 방문하여 여름의 루체른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섞인 까닭이다.

가족들과 같이 만년설로 뒤덮인 리기산을 등반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는 꿈과 같은 시간이 펼쳐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기에 이 멋진 장소를 관광하는 내내 가족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사그라들 줄 몰랐다.

리기산 꼭대기에서 땅으로 내리쬐는 햇볕을 배경삼아 만년설로 뒤덮인 수 많은 알프스 산맥들의 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가히 인간이 창조해낼 수 없는 풍경이라 확신했다. 장엄한 파노라마에 입은 다물 수 없었고, 가끔 나도 모르게 혼자 실소하기도 했다. 입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마치 본능에 이끌린 반사적인 행동처럼. 나에게 있어 루체른은 이런 곳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루체른의 도시에서 마주한 목조 다리와 빈사의 사자상은 이곳이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임을 알려주었다.

루체른 시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광경은 역시나 만년설이 쌓인 높은 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 마치 대구 도시가 분지로 둘러쌓여 있는 모습이듯이, 루체른이라는 도시는 하얗고 높은 산에 안겨있는 형색이다.

    <인터라켄, 스위스> 150102

-         인터라켄이라 적고 융프라우요흐에 대해 내 생각을 몇 글자 적어본다. 유럽의 지붕이란 슬로건을 내건 융프라우요흐. 그 만큼 수 많은 관광객이 줄지어 방문한다. 심지어 꼭대기까지 가는 길도 험난하다. 여러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아니. 비싸다. 다녀온 사람의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비싼 것이 맞다 싶다.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큰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놀랐다. 리기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 산 꼭대기에 있는 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었다는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자연그대로의 융프라우요흐를 즐길 수 있도록 더욱 많은 배려를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야기된 것이다. 일전에 이것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곳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우리나라에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요구에 따라 방문한 곳이었다. 나또한 이 스토리를 알고 있던 까닭에 이곳에 그곳에서 가장 한국적인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틀렸다. 착각이었다. 그곳은 이미 상업화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갔다. ‘한국적인 것을 느낄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한옥 안에서는 각종 음식 판매와 숙박업이 흥행하고 있었다. 한국다움을 보존하고 있는 공간이아니라, 단지 한옥이 무리지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돈을 소비하게끔 부추기는 상업지. 그것과 다름없었다.

지나친 상업화는 독이 된다. 과유불급. 너무 많은 욕심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곤 하는데, 융프라우요흐와 안동 하회마을에서 이것이 진행중인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부다페스트, 헝가리> 150106

-         유럽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도시. 직접 바라본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물론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날 정도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으나, 아름다운 곳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프라하보다 더 예뻤다고 평한다.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가 가장 인상적인 관광지로 기억하는데, 이 도시도 오랜시간 머무르며 관광하는 도시는 아니라고 사료된다. 빠른 걸음이면 족히 이틀동안 부다페스트 주요 관광지를 모두 훑어 볼 수 있다. 유명 관광지 하나하나의 매력이 타 도시의 그것보다 더 매력있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도 없다.

부다페스트가 유명한 한 가지는 온천. 아쉽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온천은 아니다. 자고로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가 오랜시간 탕과 혼연일체되는 경지를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곳의 물은 흔히 세수할 때 쓰이는 미온수정도라 할 수 있겠다. 이 정도의 온도로 과연 때를 불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단어 그대로 온천이라고 말한다면 오해의 소지를 제공하는 것일수도.

우리나라의 온천, 아니 사우나 수준의 뜨거운 물과 사우나 시설을 기대했지만웬걸. 누군가 내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찰싹때린 듯했다. 탕 속에 들어가 있어도 개운함과 시원함(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뜨거운 느낌 속의 그 시원함을 말하는 것이다)은 도통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온천 물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으니, 어쩌면 시원함을 바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지 않나 싶다. 여행중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 온천은 나에게 우리나라 목욕탕 수준의 만족도 선사하지 못했으리라.

내가 이 온천에서 느낀 만족감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 아무 생각없이 물에 몸을 담그며 앉아 있었다는 휴식()에서 온 것이었다. ‘온천이라는 특정 장소에서 기대했던 만족감과는 전혀 다른 의미. 단지 같은 단어일 뿐이다. 같은 제품이여도 Made in Germany Made in China가 다른 가치로 받아드려지듯이.

부다페스트의 장점 중 또 한가지는 저렴한 물가다. 호스텔 비용을 포함한 식비 등이 여타의 도시들과 비교할 때 매우 저렴한 도시로 단 번에 손꼽히는 도시이다. 이런 연유로 당초 계획했던 일일여행 경비의 절반도 안되는 돈을 소비하면서 4 5일 동안 부다페스트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파리, 프랑스> 150106

-         미안하다. 이 말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다.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파리를 방문하기 전 파리에 대해 어떤 기대감도 없었던 사실. 둘째, 파리를 관광하고 나서도 이 대단한 도시의 위대함을 몰랐던 어리석음.

이제서야 파리가 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손꼽히는 로망의 도시인지, 가장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도시인지 깨닫게 되었다. 몇 개 국가를 여행해보지 않았지만, 파리만한 도시를 만난 수 없었다-개인적으로 손꼽자면, 스위스와 런던을 더 높게 평가하지만-. 어느 도시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하던 간에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 생각나게 마련이고, 어느 궁전을 가건 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르게 되었다. 마치 정해진 공식처럼, 자연스럽게 파리의 관광지와 비교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파리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내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서 미처 몰랐던 사실을, 여러 사실과 부딪히며 몸소 느끼게 된다.

때문에 이렇게 되뇌어 본적도 있다. “파리를 가장 먼저 여행하면 안된다라고. 다른 도시에서 감동과 전율을 느끼기 쉽지 않다. 여러 도시들을 평가절하하기 일쑤이다. 더 대단한 놈이 가슴과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감동과 전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좁아졌다. 이미 박힌 돌이 너무나도 강력하다. 여행의 척화비. 새로운 여행지를 그곳의 모습 그대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미관만 따로 떼어놓고 비교해보자. 그래도 파리는 위대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날씨가 매우 화창한 날이라면. 더욱. 하늘에서 햇빛이 내리쬐어 도시를 비춘다면, 파리의 화창한 날의 풍경은 그 어떤 도시와 견주어서는 안된다. 이 자체로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기에 파리에게 너무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센강에 반사되는 빛, 회색의 도시가 맑은 하늘과 조화되던 날. 나는 이 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에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맑은 날의 파리는 그 어떤 도시 보다 아름답다. 오늘이 파리의 가장 아름다운 날이다라고.

    <포르투, 포르투갈> 150106

-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감동받는 순간이 있다. 포르투가 이와 같다. 아무 생각없이 방문한 자그마한 도시가 잊을 수 없는 황홀함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내 최고의 여행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그런 곳이다.

이 곳은 사실 볼 만한 관광지가 매우 많은 곳은 아니다. 매우 뛰어난 관광지 하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도시를 아직도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름다운 도나우 강과 그 야경. 둘째, 저렴한 물가. 셋째, 맛있는 음식.

삼박자가 더할 나위없이 조화되어 있는 곳이 바로 포르투였다. 도나우 강변의 퐁뇌프 다리는 주변과 잘 어울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아침이건 낮이건 밤이건 시시 때때로 변하는 햇빛이, 퐁뇌프 다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특히나 밤에 보는 해질녘의 도나우 강변의 모습은 안분지족을 느끼게 한다. 강가에 떠 있는 배 몇 척이 퐁뇌프 다리와 서서히 흘러가는 강물과 하나가 되는 순간. 아울러 강변의 상점과 주택과 와이너리 지역이 그 배경을 구성해줄 때. 비로소 포르투의 감동이 완성된다. 인적드문 곳에 혼자 앉아 조용한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 속 평화가 찾아오고 고민 따위는 생각없이 사라지는 순간을 맞이 할 수 있다. 고전속 자주 등장하는 이상속 그 곳. 어쩌면 해질녘 퐁뇌프 다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포르투가 이상 속의 장소가 아닐런지.

    <런던, 영국> 150106

-         스위스가 중년이후에 살고 싶은 도시라면, 지금 당장 살고 싶은 도시는 런던이다라고 생각했다.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말이다. 파리와는 또 다른 느낌. 파리가 중세의 모습과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유럽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런던은 현대와 중세가 혼합되어 있는, 그렇지만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울리고 있는 곳이었다.

런던에서는 파리와는 다르게 현대적인 건축물이 많다. 어쩌면 옛스러운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보면 걱정했던 위화감은 관찰할 수 없다. 오히려 튀지않으며 조화되게끔 설계한 건축가들이 대단해보인다. 이 또한 창조의 일종일터. 창조 경제의 선두주자이자, 창의가 발현되는 도시.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번뜩임, 센스를 감지할 수 있다. 꼭대기만 하얗게 설계한 더 샤드에서도 찾을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영국은 신사의 도시라고들 했다. 직접 느낀바는? 그렇다. 옷매무새에서 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남성들은 검정색의 정장을 많이 입고 있었다. 정장위에 코트와 장갑으로 추위를 맞서며, 머플러로 멋을 더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상을 준다. 튀지 않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였다. 패셔너블했던 밀라노와는 사뭇 다른 느낌. 아울러 매너가 몸에 밴듯 보였다. 작은 부딪힘 혹은 부딪힐 뻔한 상황에서도 Sorry를 외쳐주시니, 내가 더 미안해질 따름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인종차별자요, 몇몇은 매너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으니. 허나 절대 다수는 그와 같은 무지함과 바보같음을 보여주지 않으니, 어찌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처럼 어린 나이에 이런 도시에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더 없이 즐거운 일이지 않을까. 서울과는 또 다른 매력적인 도시인 런던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아직도 갖고 있다. , 그 살인적인 물가는 빼야겠지만.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150111

-         자고로 한 나라의 수도란, 가장 세련되거나 혹은 역사 깊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가장 경제적으로 발달한 곳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자그레브를 분류해보자면, 잘 모르겠다. 어느 곳에 속할는지. 경제적으로 엄청 발달한 곳 같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장소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반 옐라치치 광장을 중심으로 구시가지가 대표적인 관광거리인 이 지역. 사실 빠르게 보면 3~4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내부까지 자세히 관찰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최대로 잡아도 하루면 충분하지 않을까한다. 크로아티아 여행이라고하면 흔히들 자그레브를 제외하곤한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잠깐 거처가는 도시정도? 직접 와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라고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대단해 보이는 것도,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 미관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그레브에서 머릿속에 각인된 한 가지 이미지가 있다. 무너져가는 성벽. 자그레브 구시가지를 걷다보면 건물 외벽이 보수된 곳, 무너져 내린 곳, 금이 가있는 외벽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내 머릿속의 자그레브는 이 이미지들의 총체로 이루어졌다. 크로아티아는 불과 20세기 후반까지도 내전을 겪었기 때문에 곳곳에서 이런 상흔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도시들보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구색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아픔을 함축한 무너져내린 성벽이, 크로아티아 국민들이 느꼈을 슬픔을 일부 가늠케 한 여행지였다.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150111

-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도시이며 유명 관광지인 두브로브니크. 꽃보다 누나에 등장하여 처음 알게 된 도시이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만으로도 나를 매혹시킨 도시. 여행경비 문제로 갈까말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가지 않았다면 분명 평생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을 놓치게 되었을 것이다.

이 곳에서 이틀을 숙박하며 3일을 꽉 채운 여행을 했는데, 첫날과 둘째날은 흐린 날씨 탓에 두브로브니크 성만 관광하고, 관광의 핵심인 성벽투어는 미뤄두고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날 하늘이 자비를 베풀어 태양이 하늘 높게, 구름이 걷힌 상태로 떠오르는 날씨를 맞이할 수 있었다.

주황 지붕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곳은 가히 최고의 관광지라 할 만한 곳이었다. 성벽위에서 내려다보는 코발트 빛 바다, 회색 빛의 아름다운 절벽과 그 위에 놓인 성벽. 화룡점정으로 주황색으로 뒤 덮인 성 내부까지. 이 모든 아름다움이 한 눈에 들어오니,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단일 스팟으로는 스위스 리기산에 이어 두번째 인상깊은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이 곳을 놓쳤다면, 이런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었을까.

성 내부를 관광할 적에 성벽투어를 하던 때가 더 정확한 시기일 것이다- 이곳은 왜인지 모르게, 성 외부와는 단절된 채 살아갈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 내부의 사람들은 내 옆집, 앞집과 뒷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 길을 가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지나다녀야 할 것이라는,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그런 도시를 그렸었다. 실제로 인사하며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성문이 항상 내려져 있어 내외부의 소통이 원활하고 수 많은 관광객이 매일같이 몰려드는 곳이다. 아마 성벽이주는 특유의 느낌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예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성의 모습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까.

성벽투어를하는 동안, 성 내부에 있는 작은 풋살장에서 풋살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성 내부의 수 많은 청년, 어린이들이 모여 풋살대회를 열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성 내부의 아이들만 온 것은 아닌듯했다. 그렇게나 많은 청년, 아이들이 살고 있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그렸던 그들만의 세상의 모습을 구현해내기에 충분했다. 성 내부에서 주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웃과의 더불어 가는 삶, 교류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같은 풋살 대회였다.

그 풋살 경기를 보는 내내 내 어린시절 살던 빌라 마을이 스쳐지나 갔다. 당시를 회상하며 잠깐이나마 따뜻했던 사람들의 손길과 인사가 생각났다. 그리고는 이내 사람들의 그러한 따뜻함이 그리워졌다.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150111

-         네덜란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화훼와 히딩크 감독. 히딩크와 연관되어 축구까지 생각이 뻗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아인트호벤의 박지성 선수까지 연장전상에 있지 않을까.

네덜란드 여행은 편도 1유로의 버스 티켓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계획에 없던 국가이니만큼 기대도 없었던 것이 사실. 단지 저렴한 왕복 요금에 매료되어 떠나게 되었다.

이곳에 도착해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 모습을 보았을 때, 특별히 아름답다라고 느낄만한 모양새는 없었다. 이전부터 수로를 갖춘 도시들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이었다. 벨기에의 겐트와 브뤼헤가 대표적. 그렇다보니 아!신기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그렇게 첫 만남이 인상적이지 않았던 암스테르담과의 인연은 하이네켄과 안네 프랑크를 만나면서 조금은 회복될 수 있었다. 하이네켄 박물관에서 마주한 초록빛의 세계. 그리고 그들 기업이 각인 시키고자했던 이미지. 그래서 나에게 남게된 초록=하이네켄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남게 되었다. 체험내내 굉장히 즐거웠던 시간은 암스테르담 관광을 한 층 더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암스테르담 관광을 마치고 난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안네 프랑크 하우스다. 역사의 한 단면을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대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극적인 제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잠들어 있는 곳이 아니던가. 어렷을적 책을 통한 만남이 전부였던 안네 프랑크를 나의 몸으로 느끼며 만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흥분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가 굉장히 신기한 장소이거나 재미있는 장소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단지 나와 안네 프랑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이 이 장소를 내적으로 더욱 빛내준 것이다.

나는 개인이 새로운 장소와 맞딱뜨리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정서적 교감과 개인이 갖고 있던 이상, 상상이 더해질 때, 비로소 의미있는 여행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이러므로 나에게있어 자칫 지루한 여행지로 끝나버릴 뻔했던 암스테르담은 안네 프랑크와 하이네켄의 도움으로 그런 불명예까지는 도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잔세스카스, 네덜란드> 150111

-         네덜란드하면 풍차를 떼어 놓을 수 없다. , 물론 나는 네덜란드하면 풍차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네덜란드의 이미지인 풍차. 다소 거리감 느껴졌던 사물을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잔세스카스이다.

잠깐 여담을 늘어놓자면, 유럽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날씨를 꼽겠다. 그만큼 유럽여행은 날씨라는 변수에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라고 생각한다. 내가 잔세스카스를 방문했던 날도 다행스럽게도 무척이나 화창한 날이었다. 덕분에 풍차와 푸른 초장, 그리고 작은 호수가 어울리는 모습을 충분히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었다.

거대한 풍차가 수십대 세워져있다면 그것으로도 멋진 장관일 터. 아쉽게도 잔세스카스에서는 4~5대 정도의 풍차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가 주는 마이너리티적인 미가 있다. 다수의 존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수만의 특별함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소수정예’. 때로 소수라는 적음많은이목을 집중시킨다.

풍차 여러대와 푸른 풀과 파란 호수 강물. 그리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관광한 세네 시간의 잔세스카스는 암스테르담보다 더 멋진 기억으로 살아남아 있다.

    <하이델베르크, 독일> 150111

-         자그레브에서 느낀 이미지가 무너져가는 성벽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무너져버린 성벽을 고스란히 보존한 곳이 있다.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은 성 한쪽이 폭싹 무너져버린채 보존되어 있다. 마치 폭탄에 맞아 무너져 내린듯한 그런 단면을 목격할 수 있다. 괜스레 전쟁의 무서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하이델베르크 성 내부로는 진입하지 않고서 성곽 외부와 성 외부의 공원만 둘러보았는데, 타인에게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한 번 보고 지나가면 족한, 그런 관광지라고 생각된다.

성 반대편에 있는 철학자의 길은 어떨까 궁금해하며 걸어보았다. 아니 이게 뭔가. 그저 일반 산책로같아 보이는 길이 전부였다. 이 길을 걸으며 많은 철학자들이 철학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주먹구구식으로 하나의 이유를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은 바로 이것.

너무나 할 게 없어서 철학을 한 것이 아닐까라는 다소 비논리적인 생각. 정말 하이델베르크 성 주변은 이 성을 제외하고는 즐길거리, 놀거리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오로지 하이델베르크 대학 한 곳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류블랴나, 슬로베니아> 150114

-         어두컴컴한 밤, 잎이 풍성한 나무가 버드나무처럼 아래로 잎을 축 늘어뜨린 모습. 그런 숲의 형상. 처음 슬로베니아를 방문했을 떄 가진 이미지였다. 왠지 모르게 동유럽 느낌이 날 것만 같은 곳. 추운 날씨가 예상되었던 곳이었다.

류블랴나 성은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연상시켰고 자그마한 시가지는 오랜 시간 둘러보지 않아도 될 만큼 크지 않았다. 덕분에 한적하고 여유있게 관광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너무 빠른 시간에 본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류블랴나는 현대적인 느낌이 거의 없는 곳이다. 높은 고층 빌딩과 현란한 LED 광고 등과 같은 오늘날의 전유물이 많지 않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소도시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도시였다.

하지만 류블랴나 성 주위를 둘러보면서 왠지모를 편안함을 느꼈는데, 이 이유에 대해서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여러 감정의 복합에 따른 결과가 아닐까하는데, 논리로 설명하기보단 직관에 맡기려 한다. 그냥 명확한 이유없이 좋았단 거다. 몇몇 골목에서는 유럽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풍의 골목 느낌이 나를 반겨주었다. 다른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 순간 안정감을 느꼈다. 익숙함에서 나온 편안함일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류블랴나 성 주위에 관광할 만한 것들이 많지는 않았다. 이 곳 근교를 방문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블레드, 슬로베니아> 150114

-         류블랴나만 관광하기에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길었다. 따라서 하루는 다른 곳을 가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는데, 이 교훈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류블랴나 시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이면 도달하는 블레드. 블레드 호수와 성으로 유명한 곳이다. 슬로베니아가 스위스와 비슷하 풍경을 보여준다는 말을 들었지만, 류블랴나에서는 당최 어떤 점이 비슷한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블레드로 오는 길목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만년설 덮인 알프스 산맥과 스위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알프스 풍의 저택. 스위스 느낌을 풍기는 녀석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지않아 여기가 스위스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그 말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블레드 호수로 말할 것 같으면 깍아자른 듯한 절벽위에 있는 블레드 성과 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성당이 블레드 호수의 맑은 물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선사한다. 호수에서는 멀리 있는 만년설 덮은 산까지 볼 수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이 호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사랑 이야기 혹은 따뜻함을 주제로 한 소설의 배경 장소로 쓰여도 손색없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오리와 백조들이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과 물 위를 헤엄치는 모습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마라케시, 모로코> 150121

-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 내 생애 이 곳과 연이 닿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었다. 우연치 않게 관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낯설기만 한 이곳을 다녀오게 되었다.

아프리카. 이 곳은 흔히 검은 색채를 연상시킨다. 높은 흑인 비율. 빈민가. 굶주리는 아이들. 비록 모로코가 아프리카에서 부유한 국가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인상을 지워주었다. 주황빛의 대륙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알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 색채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인데, 모로코 국민들을 보았을 때 흑인들을 많이 접하지를 못했다. 아프리카를 단순히 검은 색채로만 기억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을 것이다.

모래로 지어 올린 주택. 무질서한 도로. 그에 따른 높은 교통 사고 비율. 지나친 호객 행위. 착한 사람들. 어떤 곳이든 반복되는 흥정. 생각외로 잘 맞는 음식.

아시아, 유럽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생활문화는 다름의 미학신기함을 선사해주었으며, 그로인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되었다. 입국한 순간 발견한 아랍어의 신선함은 출국하는 순간, 아쉬움으로 변해 있었다.

5 6일간의 모로코 여행을 마치고 출국하는 순간, 나는 그 어떤 여행지에서도 느끼지 않았던 공허함을 느꼈다. 마치 모든 여행이 끝난 것 같이.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이 마지막이라는 듯이. 아마 이 공허함은 가장 기쁜 순간이 끝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느꼈던 아쉬움이 아니었을런지. 이 왠지 모를 근원없는 뒤숭숭한 기분이 역설적으로 모로코 여행의 즐거움을 가장 잘 설명해줄 것이다.

    <사하라 사막, 모로코> 150121

-         지구에서 가장 큰 사막. 사하라. 마라케시에서 사막투어를 신청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사하라 사막은 조금 특별했다. 그곳에 당도하기 전까지 거대한 암석들과 짙은 황색의 토양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었다. 그런데 사하라 사막이 보이는 순간, 진정한 사막의 형상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막의 고운 모래 입자와 특유의 사막의 모래색.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 터져나오는 곳곳의 환호성은, 이곳을 기다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고운 모래. 모래성. 낙타 발자국과 그것의 배설물. 한 포기씩 자라고 있는 식물들.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 이 모든 것들이 사하라 사막에서 볼 수 있는 풍경.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에 들어갔는데, 낙타 등에 타는 순간은 어찌나 특별하던지. 당시의 즐거움은 꽤 오랜시간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꽤나 뾰족한 낙타의 등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40여분간 심한 고통을 느껴야했다. 이런 탓에 다음날 다시 올라타야하는 낙타를 생각할 때, 나의 엉덩이는 강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사하라 사막을 나의 두발로 밟으면,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모래들을 느낄 수 있는데, 어찌나 많이 들어오던지 몇 발자국 걷지 않아도 신발 내부는 발과 모래로 가득차있었다. 공기 한 점 들어올 공간도 없었다. 비단 신발만이 아니라 바지 뒷주머니와 바지 안쪽. 그 어느 곳이든 이 작은 입자의 모래는 죄다 침투하곤 했다. 도저히 막을 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려니했다. 사하라 사막에서는 모래와의 혼연일체가 당연하기때문인데, 이것에 대해 불평불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사막의 특수성 때문에 주위의 불빛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불빛이라고는 우리 손안에 켜져있는 스마트폰과 텐트안에 켜져있는 작은 전등이 전부였다. 당연히 하늘의 별들이 숨김없이 드러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별빛을 감추는 서울의 수 많은 빛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이곳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별들은 언제나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었음을 생각했다. 빛이 많으면 하늘의 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새삼 이 사실을 체감했다. 그래서 먼 타국 땅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별을 보는 시간은,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처 헤아리지 않았던 나의 무관심을 반성하는 계기였다.

아참, 미처 적지 못할 뻔했다.

겨울은 어디든 춥다. 그곳이 사막일지라도. 특히, 밤은. 사막이 덥기만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 큰 일교차가 괜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춥다, 겨울의 사막은.

    <아베이루, 포르투갈> 150124

-         포르투갈의 베니스라 불리우는 곳. 베니스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은 도시였다. 물론 베니스를 다녀온 적은 없지마는 베니스가 그와 같은 명성을 누리는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다녀온 아베이루가 베니스와 정말로 흡사하기 때문에 서유럽의 베니스라 불린다면, 나는 절대로 베니스를 방문하지 않을 것이다.

도시 내부에 흐르는 작은 강줄기를 따라 어여쁘게 치장한 흔적이 보이는 이 곳. 나름 알록달록 꾸며놓은 것이 어쩌면 서유럽의 베니스이고자 소망했던 그들의 노력때문이 아닐지 생각이 들었다.

아베이루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베니스라 외쳤던 그리고 베니스를 닮고자 했던 그들 노력의 발로가 아니라, 더 자연스럽게 형성된 듯한 아랍풍의 도시 모습이었다. 모자이크와 주황 색채의 조화. 오히려 이 자체가 더 멋스러움을 보여주었는데, 왜 이들은 베니스가 되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서유럽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이 아름다움이 더 멋스러웠다.

또 다른 베니스가 되기보다는 독창적인 아베이루로 남기위한 선택과 노력을 기울였다면, 과연 오늘날의 아베이루는 어떤 모습이었을는지.

잠시 떠들썩한 유행이 되는 것보다 어떤 류의 유형이 되는게 Much important” <일리어네어 레코드 - We Gon’ Make It 중에서>

    <바젤, 스위스> 150124

-         로망의 국가 스위스에서 처음 마주한 도시. FC바젤이라는 축구팀의 연고지로만 알고 있었던 도시였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도 없는 곳이었다.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인 여자분께 들은 바로는 건축으로 상당히 유명한 도시라했다. 사실 잘 느끼지 못했지만.

그 말을 듣고서 스위스에서 마지막날 1박을 하는 시점에 바젤을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혼자서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든 생각은. 왜 여기가 건축의 도시일까?라는 의문. 건축에 문외한이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도, 아무 멋진 도시 경관도. 인상깊은 장면이 머리 속에 각인되지 않았다.

, 여행하다보면 이런 도시 한 두곳 만나는 것은 일도 아니지 않은가.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면서 만나는 그런 류의 도시쯤이라 생각하고 기분좋게 넘기자고 다짐했다.

여행하면서 무엇가 꼭 해내자, 꼭 이루어내자라는 생각이 여행을 망칠 수도 있지 않을까. 괜스레 피곤해지고, 압박감에 여행을 그르치게 될 수도 있으니.

    <바르셀로나, 스페인> 150126

-         독일의 유명 축구선수 미하엘 발락이 대한민국에 첫 방문할 때 내뱉은 한 마디. “이곳이 차붐(차범근)의 나라입니까?”. 많은 이들이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하는 말이 있을 것이다. “이곳이 가우디의 도시입니까?”.

바르셀로나에서는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를 보러 온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우디의 건축물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수 많은 관광객들이 줄지어 있으며, 단체 관광객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천재적이다라는 수식어는 쉽게 붙여지지 않는다. 동시대에 구별되는 탁월한 특징이나 업적이 있어야만 따라닐 수 있는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작품을 만나는 동안,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고 칭송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주변과 동화되어 있는 까사밀라. 자연을 형상화시킨 까사 바트요. 이런 공원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은 구엘공원. 옆 건물들과 조화되진 않지만 탁월한 감각이 돋보이는 까사 비센스 등. 그의 건축물 하나하나를 눈으로 마주할 때마다, 그의 대단한 솜씨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천재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천재와 일반인은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인정해야할까 싶었다.

-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만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직접 경험해본바로는 가우디이외에도 여러 부류의 바르셀로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탐나는 요소는 날씨다. 화창한 날씨. 내가 머문 6일 동안 구름낀 흐린 날이 없었으며, 빗방울은 한 번도 구경할 수 없었다. 매일 해가 하늘 높이 떠올랐으며, 도시 전체가 밝게 빛났다. 어찌 이런 날씨 아래서 도시가 예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맑고 화창한 날씨는 도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여행중에 나는 수없이 깨달았다. 일요일 오후 화창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그런 완벽한 날씨에 바르셀로나내의 공원에 나가보자. 나는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행복을. 가족끼리 연인끼리 함께 걸으며 소소한 대화를 하는 모습. 유모차를 끌면서 옆에는 아내와 사랑하는 아기와 함께 걷는 모습은 그 자체로 행복의 상징이 될 수 있어 보였다. 행복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였음을 확신했다.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은 이런 모습은 공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일요일 오후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날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을 그려보았다. 여의도 공원. 남산. 아니면 명동 같은 번화가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숙이 새겼다. 일전에 무한도전에서 하하가 한 말이 있다. 다음과 같은 뉘앙스의 말이었다.

다른거 다 필요없고, 아기를 한 손에 안고 다른 한 손에 아내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그게 최고인거 같아. 그게 행복이지”.

맑은 날씨를 가족과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고 우리 가족도 저렇게하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실천해보리라 다짐한다.

    <스페인> 150126

-         스페인 국민들은 열정의 대명사로 통한다. 잘 놀고 늦게까지 놀고 즐기며 춤추기를 쉬지 않는 듯한 이미지. 왜 그럴까.

몇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느낀바로는, 날씨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서유럽, 동유럽과 다르게 1월인 지금도 해가 6시에 진다. 다른 나라는 4시이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데, 이곳은 다르다. 겨울인 1월에도 이 정도 차이를 보이는데, 이외의 월()들은 오죽할까.

이 말인즉슨, 스페인은 낮이 길다는 이야기다. 비교적 늦은 시간에도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지낼 수 있다. 또한 낮에는 날씨마저 화창해서, 실외에 나가기를 꺼리지 않는다. 답답하게 실내에 있는 것보다 탁트인 곳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이런 탓에 사람들 삶 속에 여유가 있다. 휴식을 즐길 줄 알며 급박하지 않다.

또한 비가 자주내리는 여타의 유럽과 다르게 비를 찾아 보기도 힘들다.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하늘이 자주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여러모로 거주하기 아주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삶을 윤택하게하는 여타의 요소 경제력, 문화 수준 등과는 별개로 이곳 바르셀로나는 삶을 여유롭게 한다.

행복 추구가 인간 삶의 목적이라 한다면,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삶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바르셀로나는 최고의 삶의 터전이다.

-         여행에서 중요시 되는 요소를 뽑아 점수화 시켜 여행지를 평가해보자. 즐길거리, 먹거리, 휴양은 반드시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세가지를 평가하여 점수화한다고 가정하면, 바르셀로나는 세계 최상위권의 평균점수를 보유한 도시가 될 것 같다.

스페인이야 열정의 나라로 즐길거리, 놀이 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이다.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나라인데, 이 나라의 두번째 도시이다. 더할 나위 없이 즐길거리는 세계 최고라 자부할 수 있다. 이를 테면, 프리메라리가 가우디 쇼핑 등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할 컨텐츠를 갖고 있다.

먹거리. 다양한 해산물과 하몽으로 대표되는 육고기, 아울러 다양한 채소와 야채까지. 이 곳 스페인의 식문화는 여러 재료를 비교적 다양하게 섭취하고 있다. 여타의 유럽에서는 채소 섭취 빈도가 높지 않았다. 몇몇 야채만 주기적으로 섭취할 뿐이었으며, 마트를 방문해도 채소의 종류가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은 달랐다. 가장 많은 수의 야채를 판매중이었으며, 다양한 채소를 먹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휴양. 강우 빈도가 높지 않으며 구름 낀 날이 많지 않다. 하루종일 태양은 높게 떠 있으며 온 도시를 비춘다. 더군다나 일몰시간은 상당히 늦다. 주변에 바다가 있어 휴양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고 요트를 타고서 바다 위에 떠 있을 수도 있다.

고로 나는 바르셀로나가 균형잡힌 여행 요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각 요소의 합이 여행에 대한 만족도를 결정짓는다면, 주저없이 이 곳이 상위권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도시일 것이다.

    <그라나다, 스페인> 150128

-         이슬람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알함브라. 아울러 꽃보다 누나를 통해 화제가 된 탓에 많은 한국인들이 많은 도시였다. 이슬람 무어인들이 거주했다는 알바이신 지구와 그들의 왕이 상주한 알함브라 궁전. 이슬람 건축에 손톱만큼의 지식과 관심이 없어 이곳을 방문하기 전부터 기대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무지함은 알함브라의 나스르 궁전에 입장하는 순간 무어인들에 대한 경외감으로 변했다. 섬세한 궁전 내부와 벽면 장식은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알함브라에 관한 기본 정보조차 없었지만 그들의 놀랍도록 섬세한 장식 능력에 이슬람 문명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을까도 궁금해졌다.

나스르 궁전 뿐아니라 알함브라에 있는 나머지 세 곳(헤네랄리페, 알카사바, 카를로스 5세 궁전)의 건축물도 상당히 아름다웠는데, 그중 최고를 뽑자면 알카사바 성채에서 바라본 알바이신 지구와 만년설로 뒤덮인 시에라네바다 산의 풍경이다. (나는 이번 유럽여행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여행 유형을 파악했다. 그동안 방문했던 여행지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과 다시 방문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던 곳은 여지없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유한 곳이었다) 만년설로 뒤덮인 높은 산을 뒷 배경으로 앞에는 그라나다 시내가, 옆에는 백색의 신비감이 느껴지는 알바이신 지구가 자리잡고 있다. 눈을 어디에 두어도 칭찬 일색의 주변 풍경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이곳 그라나다를 잊지 못할 여행지로 뽑는 여행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이유를 단 번에 알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라나다를 아주 좋은 도시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당신이 스페인 그 어느 곳에 있던지 간에, 그곳이 혹 바르셀로나이건 마드리드이건 아니면 북쪽의 빌바오이건, 이곳 그라나라를 방문해야만 한다. ‘알함브라’.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세비야, 스페인> 150130

-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 세비야. 스페인의 상징 투우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라고도 한다. 세비야를 보기 위한 목적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이도 많지만 근교를 여행하기 위하여 머무르는 관광객도 많다. 아쉽게도 나에게는 시간이 허락지 않아 세비야만 구경할 수 있었다.

세비야에 대해서는 며칠을 머물러야 하는가를 놓고 많은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사람마다 이 도시와 어울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큰 탓일 것이다. 나는 1 2일로도 충분했다. 도시 한 곳을 쥐잡듯이 구석구석 살펴보는 편도 아니거니와 오래 머무르면서 이 곳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세비야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컨텐츠는 플라멩고’. 스페인 집시의 애환과 슬픔이 담긴 이 춤을 꼭 보아야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노동요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슬픔과 고통, 아픔을 다른 대상에 부여하고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슬픔과 아픔을 극복하기 위함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플라멩고를 볼 때에 그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는지.

여행 초기부터 줄 곧 느껴오는 바이지만, 대성당이나 성당, 교회 등에 관계없이 종교 행사와 관련된 건축물에서는 관광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영국의 웨스터민스터 사원, 쾰른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 등.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성당들을 방문했지만, 한결 같은 나의 반응은 달라질 줄을 모른다. 나의 무지탓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깨나 많은 것으로 안다.

나의 친한 형은 바티칸 대성당을 다녀온 이후로 성당을 다시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 형도 나와 같은 성당에서 감동을 찾지 못하는 그런 부류였지만, 이제는 바티칸에서의 경험을 통해 고해성사를 하게 되었다. 성당 보는 것을, 그리고 중세시대의 회화 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티칸 투어 한 번이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180도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바티칸 대성당에 꼭 가보아야만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지만 그 날이 언제가 될 지 모르겠다. 그 날이 나에게 임하기 전까지는 나는 계속 성당 입장 5분만에 싫증을 느끼고, 우와 상당히 크다!라는 말만 되풀이 할 것 같다.

    <코르도바, 스페인> 150130

-         내 탓이다.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주의를 기울여 읽지 않았다. 나는 메스키타에 입장하기 전까지 이 곳이 사원인줄은 맹세코 몰랐다.

, 이번에도 종교 시설이다. 메스키타의 상징인 빨강과 하얀 무늬를 보고선 우와 신기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였다. 10분만에 이 공간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곳을 가던지 같은 주제, 비슷한 모양새. 내가 그토록 좋아하지 않던 종교 시설을 다시금 방문하고 말았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성당과는 다르게 여러 종교 색채가 혼재해 있었고, 이 점이 나를 흥미롭게 해주었다. 관광하고 있을 때 사원 안에 울려퍼진 장엄한 오르간 연주도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라 여겼다.

    <세고비야, 스페인> 150207

-         세고비야는 마드리드 근교 도시로써 세 가지 정도 볼 것이 있다. 로마 수도교, 알카사르 그리고 대성당. 로마 수도교가 그 중 많은 이들이 보고 싶어하는 관광지일 것인데, 내가 본 바로도 그렇다.

알카사르는 기대보다 외관이 훌륭한 것도 아니었으며, 꼭대기 전경이 아름답지도 않았다. 대성당은 내부 입장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연설명을 할 수 없겠지마는, 다른 대성당들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싶다. 어느 블로그에보니 세고비야는 웅장함과 거대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세고비야와 쌍벽을 이루는 근교 도시인 톨레도는 아기자기함으로 설명할 수 있다했는데. 세고비야에 갔다온 사람으로서 이 표현에 동의할 수 있었다. 다만, 크기가 비교적 크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컨텐츠와 관광의 질 자체가 거대하다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관광자에게 달린 몫이기 때문에, 누가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세고비야를 방문한 날은 유럽 여행 역사상 가장 나쁜 날씨 중 하나로 손 꼽을 수 있는 날이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눈 한국 여학생 한 명도 이 같은 생각을 밝혔는데, 자신의 유럽여행 50일 중 최악의 날씨로 세고비야 방문일을 거침없이 뽑아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인지 비인지 도통 분간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하늘에서 계속 뚝뚝 떨어지는데, 우산으로 막기도 그렇다고 막지 않기도 애매했다. 바람이라도 불지 않았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이런 뉘앙스로 글을 쓴 것으로 보건데, 바람이 세차게 불었음을 짐작하시겠지요.

아무튼 그렇게 유럽여행 최악의 날씨에 스페인 근교를 다녀왔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로마 수도교를 봤다! 이 정도. 사실 느낌표를 붙이지 않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으로 와 닿겠다라고 생각한다. 세고비야를 다녀오니 남는 것은 하나, “로마 수도교를 봤다”.

    <톨레도, 스페인> 150207

-         마드리드 근교 두 번째 도시는 톨레도. 혹자는 톨레도를 마드리드 근교중 No.1이라 칭송했으며, 마드리드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중 한가지로 뽑기도 했다.

그래,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이 곳은 세고비야를 방문하는 날과는 전혀 다르게 하늘이 웃어주었다. 간간히 떠있는 구름과 맑은 하늘. 여행하기 아주 좋은 날씨였다. 겨울인 관계로 강한 바람은 차치하고 말이다.

톨레도는 톨레도 대성당과 알카사르가 유명한 곳으로, 스페인 최고의 화가로 칭송받는 엘 그레코가 머문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엘 그레코와 연관지은 관광지가 많이 활성화 되어 있었다. 톨레도 대성당은, 예상하시겠지만, 입장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누군가는 왜 여행하는 것이냐고, 당연히 그 곳의 랜드마크 격인 대성당을 입장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할 테다. 그리고 덧붙이는 한 마디. “제 여행인데요?”

아무튼 계획에 없던 엘 그레코 박물관에서 엘 그레코의 작품을 감상하였다. 다음날 관람할 예정인 프라도 미술관에도 엘 그레코의 작품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 느낌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이후에 톨레도 작은 골목 골목을 걸어보았다. 마드리드로 수도가 옮겨지기 전까지 수도였으며, 수도가 변경된 이후로는 발전하지 않아 중세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다른 도시와 특별히 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다. ‘보다 중세다운 모습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미 마주했던 수 많은 도시 모습과 다르지 않아 실망감을 느꼈던 것이다.

오히려 라만차 지방에 있는 톨레도는 돈키호테를 그려보는 좋은 장소가 되어 주었다. 톨레도 시내 밖으로 펼쳐져 있는 붉은 빛의 토양이, 넓디 넓은 대지가 돈키호테가 달렸을 법한 무대를 제공해 주었다. 왠지 스페인은 언제까지고 돈키호테의 나라로 남아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었는데, 스페인 남부에서도 느꼈던 비슷한 전원 풍경이었다.

나는 잠시 몇 장면의 그림을 떠올렸다. 우직함의 상징인 돈키호테가 힘 없는 말을 타고 저 붉은 대지위를 달려가는 모습을. 볼품없는 한 사내를. 술집에서 일어난 여러 싸움과 그가 느꼈던 여러 감정을.

역시 여행은 개인이 갖고 있는 경험과 새로운 장소와의 만남이지 싶었다.

    <마드리드, 스페인>

-         50일 유럽여행의 마지막 도시. 교환학생을 마무리 짓는 도시. 나의 최종 목적지인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다음날 지인들과 같이 밥먹고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보며 스페인 다움을 제대로 느꼈다.

마드리드를 포함한 스페인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 무엇이냐는 물음이 주어진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음식. 나는 이곳 스페인의 음식 문화가 매우 좋았다. 빠에야는 특히나 최고로 손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먹물 빠에야는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해산물로 구성된 음식이기 때문에 더욱 더 내가 사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CF의 표현을 빌리자면, 먹물 빠에야는 내가 사랑한 음식 BEST1이다.

유럽에 거주하면서 가장 그리웠던 음식인 해산물을, 이곳 스페인에서는 쉴새없이 섭취한다. 대강보면 육류와 해산물을 비슷한 비율로 먹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웠던 만큼 스페인에서 먹은 해산물은 내게 더 많은 기쁨을 안겨주었다.

또 한가지 축구.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의 두 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많은 클럽이며 동시에 가장 실력있는 축구클럽으로 평가받는다.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의 경기를 직접 눈앞에서 본다는 것은, 나름 축구팬으로 살아온지 10여년이 지나는 나에게 커다란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아쉽게도 레드 카드를 받아 경기에 나오지 못한 호날두를 제외하면 말이다. 하필이면 왜 내가 보게 될 바로 전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았는지. 그를 두고두고 욕했다경기를 보고나니 눈에 띄는 선수는 왼쪽 풀백인 마르셀루. 그를 두고 왜 최고의 풀백이라 칭송하는가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견이 있을리가. 그는 과연 최고였다. 크로스, 돌파, 센스, 스킬 등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최고의 기량을 선보여주었는데, 그로인해 풀백이라는 자리가 정말 멋져보였다.-잠시 딴소리 한 마디 하자면 김진수 선수가 대성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