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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이란? 너는 도대체 어떤놈이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평소에 책을 읽다보면, 여러 글들을 읽다보면 '형이상학'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매번 이 단어가 등장할 때 마다 정확한 의미는 모른채 "대충 ~의미이겠지"라고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문장의 의미를 혹은 문맥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알게되자, 이 '형이상학'이라는 놈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졌어요.

더 이상은 좌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오늘! 이놈을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았습니다.


역시나 철학에서 씌이는 놈 답게 쉽게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형이상학을 보다보니 다른 모르는 단어가 등장했고, 새로 등장하는 놈을 올바르게 모르고서는 형이상학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벅찼습니다. 자연스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 끝에, 이 놈의 의미를 대강이라도 습득할 수 있었어요.


<'형이상학' 공부하던 제 책상. 사실은 우측 A4 용지로 인쇄해놓았던 '문예 사조 '를 공부하려 했는데, 다른 곳으로 새버렸습니다..>




'형이상학'을 파악하는 여정은 '형이상학' 검색하기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랬더니, 전혀 생소한 Meta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다시 추상화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사실 Meta라는 개념도 평소에 많이 궁금했던 단어였어요)
다행히 Meta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추상화는 다시 다른 개념과 이어지더군요. (좌절..)

결국에는 <추상 → 표상 → 사상 →  사상(思想) → 오성>에 이르러서야 '형이상학' 개념 이해의 여정이 끝날 수 있었어요.

Meta이후 등장하는 비슷한 수준의 단어 형상과 질료는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어요.


이후의 글은 크게 3가지 수준에서 구성하였습니다. 
(글의 흐름은 제가 형이상학을 이해하기 위해 검색하고 글을 읽었던 순서 그대로입니다)

1. 형이상학에 대한 개념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2. Meta, 형상, 질료의 설명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는 빨강으로 표시)
3. 추상 → 표상 → 사상  사상(思想) → 오성 으로 이어지는 '상'자 돌림 단어들의 이해!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는 초록으로 표시)


형이상학을 탐구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네요. 
(아래의 자료는 전부 네이버 사전을 통해 추출하였습니다. 파랑글씨는 네이버 사전 그대로 옮겨온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참고하시면 돼요!)

밑줄쳐진 부분들만 읽으셔도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도 있으실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없으시다면 이 부분을 먼저 읽어보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럼, '형이상학'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형이상학

[ Metaphysics ]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천문, 기상, 동식물, 심리 등에 관한 연구를 자연학(自然學, physica)이라 하고 이것을 먼저 배운 다음에 모든 존재 전반에 걸친 근본원리, 즉 존재자로 하여금 존재하게 하는 근본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제1철학을 형이상학이라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망한 후 그의 저서의 전집을 편집한 안드로니쿠스(Andronicus)는 그 뜻을 받아서 『제1철학』에 관한 저서를 『자연학』에 관한 저서의 뒤에 놓고서 그것을 ‘타메타 타 피지카(tameta ta physika, 자연학의 뒤에 놓인 것)’라 불렀다. 그 후 *메타(meta)라는 말이 ‘뒤’라는 뜻 이외에 ‘트렌스(trans, 무엇을 넘어서고 있다는 뜻)’라고도 이해되자 형이상학은 경험의 세계에서 변동하는 것들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들에 관한 궁극적인 원인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 메타(Meta-)

~를 초월한, ~의 뒤에, ~의 이면에, ~의 본질적인, 더 높은 개념의 등의 의미(인식론에서는 ~에 대해서)

다른 개념으로부터 — 추상화⑴를 가르키며, 후자를 완성하거나 추가하는데 쓰인다.

 

 

-     <플라톤> 형이상학


플라톤(Platon)의 철학은 실체(實體) 현상(現象)을 구별하는 기반 위에 서있다. 플라톤의 『국가론(politeia)』 마지막 권에 나오는 화가들


에 대한 공박(攻駁)이 이데아 곧**형상(形相, eidos)에 대하여 분명히 해명하고 있다.


여러 가지 개개의 침대는 실재(實在)가 아니며, 오직 그 이데아의 모사(模寫)에 의해 만들어졌을 따름이다. 그 이데아만이 유일한 참된 실재의 침대이며, 신으로부터 창조된 것이다. 이 유일한 침대에 대한 것은 지식이 될 수 있으나, 목수가 만든 개개의 침대에 대해서는 오직 의견이 있을 뿐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idea)는 형상(形相, eidos)을 말하며, 원래는 본다는 의미이다. 이데아의 세계는 경험하고, 수시로 변화·생성하는 이 세계를 넘어서 영원하고 불멸한 실재로서의 진정한 것이다. 이데아의 세계가 감성적 사물의 원형이라면, 현상의 세계는 원형의 불완전한 모사품이다. 이데아의 세계가 불변적이고 영원한 세계라면, 현상의 세계는 가변적이고 일시적인 세계인 것이다. 또한 이데아 세계가 완전한 세계라면 현상의 세계는 불완전한 세계이며, 이데아 중의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이다.

 

** 형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 플라톤 이데아세계와 감각에 의한 현존의 개물 세계를 분명하게 나누어, 세계를 이원화한 것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idea) 혹은 에이도스를 형상이라 하여, 형상과 이에 대한 ***질료(hylē), 이들 양자의 상호관계를 가지고 세계를 일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즉 형상은 활동적이고 질료는 수동적이며 형상을 취하여 질료는 현실적인 것이 된다.
예를 들면 대리석(질료)이 하나의 꼴(형상)을 얻는 것으로써 인간의 상이라는 현실적인 것이 되어 실현된다. 이로부터 그는 모든 실체는 질료와 형상과의 통일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형상은 물( )을 서로 구별하여 그것을 정의하는 기본이며 결국 물의 본질이다. 질료는 형상을 얻어 현실의 것이 되는데, 질료는 가능태(可能態, dynamis)이며, 형상은 이에 대하여 현실태(現實態, energeia)임과 동시에 형상은 질료가 실현하는 목적이다.

 

*** 질료

질료는 재료이며 이것에 형상이 가해짐에 따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일정한 물()이 된다. 형상은 활동적ㆍ능동적이고 질료는 비활동적ㆍ수동적이며, 형상은 현실성이고 질료는 가능성이다
예를 들면 한 덩이의 대리석은 질료이고 이것에 형상이 작용하여 하나의 조각상이 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출발점은 플라톤의 이데아론(theory of idea)에 대한 비판(批判)과 보편개념(普遍槪念)에 대한 해설이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주장은 ‘제3인간(The Third Man)’이다. 만일 한 인간이 이데아의 인간을 모방해야만 인간이 된다면 이 인간과 그 모방한 이데아의 인간에게 모두 공통된 이데아의 인간이 또 하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Sokrates, BC 470~BC 399)가 인간인 동시에 동물이라면, 이데아의 인간도 이데아의 동물일 것인가? 하나의 보편개념은 실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보편개념도 하나의 실체의 명칭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각 사물의 실체는 그 사물에 독특한 것으로, 다른 어떤 사물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개념은 공통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한 가지 이상의 사물에 공통으로 속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개념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즉 보편개념은 그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고, 오직 특수한 사물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다른 문제점은 형상(形相, eidos) 질료(質料, hyle)의 구별이다. 형상과 대조되는 **질료는 정신(精神, spirit)과 대조되는 질료와는 다르다. 그가 말하기를 영혼이란 육체의 형상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은 분명한 어떤 형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형상은 물질의 일부에 대하여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목적론적이다. 어떤 사물에 있어서 형상은 이미 그 본질이며, 1차적인 실체이다. 보편개념은 실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형상은 실체적인 것이다. 사물들은 형상을 얻게 됨으로써 그 현실성이 증가된다. 형상을 갖지 않는 질료는 단지 가능태(可能態, dynamis)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형상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것이며, 그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존재인 동시에 모든 개체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     <데카르트> 형이상학

데카르트는 감각에 대한 회의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이른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方法的懷疑, methodical doubt)이다. 외적 감각은 때때로 우리를 속이므로 믿을 수 없다. 벌꿀이 겉보기에는 같지만 불 옆에서는 변하는 것이 그 예이다. 내적 감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꿈속에서 우리는 실제로 잠자리에 누워 있는 데도 불구하고 숲속을 거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1+1=0인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화학(化學, chemistry)과 경제학(經濟學, economics)의 경우에 한해서이다.

 

1+1=1인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물리학(物理學, physics)의 양적(量的)인 경우에 해당한다. 즉 우유 500㎖ 하나와 500㎖ 하나를 더 합하면 1000㎖인 하나가 된다.

1+1=2
의 경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數學, mathematics)의 경우이다.

1+1=23
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 한 산골마을에서 엄마돼지와 아빠돼지 사이에서 13마리의 아기돼지가 태어났다. 주인은 좋아서 동네 사람들에게 돼지 다리를 사다가 막걸리 잔치를 했다. 저녁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돼지 마리수를 확인했더니 엄마돼지가 8마리를 더 낳아 21마리가 되었다. 이 경우는 생물학(生物學, biology)적인 경우지만 1+1=23이라는 답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2+3=5
는 꿈속에서도 현실에서와 같이 전능한 악마가 있어서 우리를 틀리도록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성(悟性, understanding)뿐이다. 이러한 방법적 회의에서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의심하는 나’, ‘생각하는 나’의 존재였다. 악마가 아무리 간사하고 교활하고 속이기를 잘 하더라도 만일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를 속이지는 못할 것이다. 도둑도 훔쳐갈 물건이 있어야 도둑질을 할 것이 아닌가?

내가 모든 것을 의심하려고 해도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는 ‘나’라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끝내 무엇인가는 내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의심하면 할수록 더욱 확실한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Ich denke, also bin Ich/I think therefore I am).”의 진리만은 그야말로 분명한 것이며철학의 제1원리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제1원리를 그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판명(判明)한 것이라 여기고, “우리가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한 것은 모두 진리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생각하는 동안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며, 오직 그때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생각하는 것을 멈추면,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어질 것이다.

 

 

   추상

[ abstraction, 抽象 ]

 

대상으로서의 소여(所與) 전체로부터 특정성질이나 공통징표(共通徵表)를 분리하고, 골라내는 정신작용.

 

예를 들면, 인간의 얼굴만을 표상(表象)으로서 분리하는 것은 대상과 동차원상(同次元上)의 절단(切斷)이며 본래의 추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빨간 넥타이로부터 ‘빨강’ 혹은 ‘형()’만을 추출(抽出)하는 것, 빨간 우체통, 잘 익은 토마토 등에서 공통적인 ‘빨강’을 골라내고, () ·청() ·황()으로부터 ‘색()’을 빼내는 것은 추상이다.

추상은 불필요한 계기를 버리는 사상(捨象)을 표리일체(表裏一體)로 동반한다. 추상에는 보편성 ·일반성의 정도가 있고, 고도(高度)의 추상은 언어작용과 밀접히 관계하여 보통명사나 명제(命題)의 형성, 유형화(類型化), 이론구성의 전제(前提)가 되어, 일상적(日常的) ·학문적 활동에 불가결한 작용이다.

 

   사상

[ 捨象 ]

추상(抽象)의 대어(對語).

 

추상이 많은 사물이나 표상(表象) 속에서 하나 또는 몇 개를 분리하여 그것만을 따로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 데 비해, 사상은 그 때 그 나머지의 것을 도외시하여 버리는 기능을 말한다.(추상은 사상을 동반함)

 

   표상

[ representation, 表象 ]

 

마음 또는 의식(意識)에 현전(現前)하는 것을 뜻하는 철학 ·심리학용어

 

보통 감각적으로 외적 대상을 의식상에 나타내는 심상(心象)을 말한다. 이 점에서 사고에 의한 논리적, 추상적인 개념과 구별된다. 표상은 지각에 입각하여 형성되지만, 이 경우, 지각의 대상이 지금 거기에 있을 때에는 지각 표상이라고 말해지며, 과거에 지각된 대상이 기억에 의해 재생(再生)될 때에는 기억 표상, 또 과거의 지각의 여러 요소가 주관에 의해 조합되어 나온 것은 상상 표상이라고 한다

좁은 의미에서는 후자의 2개만을 표상이라 부른다. 관념이라는 말도 표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상

[ thought, 思想 ]

 

감정이나 의지에 대하여 사고적(思考的) 현상(現象)을 이르는 말.

 

광의로는 정신활동 모두를 가리키나 보다 엄밀하게는 종합적 인식대상(認識對象)을 이해하는 오성(悟性) 및 이성(理性)의 작용 또는 이와 같이 이해된 한도에서의 대상도 의미한다.

   오성

[ Understanding, 悟性, Verstand ]


고대에 플라톤 이데아를 지적 직관으로 포착하는 이성에 대하여 논증적ㆍ개념적 능력을 로고스라 하였는데, 오성이 바로 로고스에 해당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지성ㆍ사고의 능력이라는 의미로 쓰인다감성에 대립한다는 점에서는 이성과 동일하고 때때로 혼용되기도 한다. 칸트는 감성적 소여에 대하여 과학적 인식을 성립시키는 능력을 오성이라 하고, 플라톤의 생각을 이어받아 이성은 초감각적인 통일체(이데아)를 파악하려고 하는 능력이라고 하였다헤겔은 오성을 고정된 추상적 개념을 부여하는 사고로 본 반면, 이성은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