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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내가 글쓰기 연습을 하는 이유(존 로크와 하이데거의 말을 통하여)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줄 뿐이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_존 로크



인간은 자신이 언어를 형성시키고 주인인양 행세하지만, 사실 언어는 인간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_하이데거



독서를 취미로 삼게되면서 자연스럽게 물꼬를 트게 된 생각이 하나 있다. 책을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될까하는 의문. 혹자는 (아마 내 기억에는 <호모부커스, 책 읽기의 달인>이라는 책이었다) 책을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많이 읽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책을 '단순히' 많이 읽는 습관에는 반기를 들기도 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정답이 있어야하나 싶기도 하다. 그저 개인에 맞춘 해답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속편한 결론이 아닐지.

나의 해답은 책을 천천히 읽더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 좋다는 것. 빨리 읽어봤자 책을 덮었을 때,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상황이 반복되자 이건 아니다 싶었고, 결국에는 책 읽는 방식을 바꾸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책 읽는 방식을 바꾸었다고 해서 이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조금 나아지긴 했다. 책을 덮었을 때, 나의 독서노트에 빼곡히 들어찬 여러 정보와 지식, 기억할 만한 문구 등. 그리고 책 한권을 읽고나서 써보는 A4 한 장짜리 짧은 소감. 뭐, 이런 것들이 남아있더랬다. 사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러한 내용도 머릿속에서 사라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손으로 쓰면서 머릿속에 한 번더 각인시켰다는 점과 나의 말로 풀어서 책을 이해했다라는 과정은 실로 중요함을 체험하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직접 써봐야 하는 당위성에 관해 작은 단초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실 아래의 글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이거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내가 글을 써야하는 명확한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상에 대한 언어의 독특한 역할은, 개념 표현을 위한 재료로서의 음적 수단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소리 사이의 중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로 인해 사상과 소리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단위의 상호 구분으로 귀결된다. 원래 혼동 상태에 있는 사상은 분해됨에 따라 명확해 질 수밖에 없다."

<일반언어학 강의 - 소쉬르> p.156


여기서 소쉬르가 말하는 사상을 책을 읽고난 뒤의 나의 생각과 관념이라 치환하고, 언어(소리의 결합)을 내가 직접 풀어쓰는 글이라 가정해보자.

다시 말하면 "혼동 상태에 있는 책에 관한 나의 생각과 관념은 분해됨에 따라(나의 언어로 재탄생함에 따라) 명확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글쓰기를 연습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내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때 뭉쳐있는 실타래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리되지 않고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무질서한 존재. 이것을 풀어해쳐 정리하지 않으면 나의 지식이 아니요, 후에 필요한 경우 꺼내쓰지 못할 지식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이를 글로 풀어내어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해하고 있으면, 이야말로 나만의 참 지식이 되며 응용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하이데거가 말했던, 사실 언어는 인간의 주인으로 군림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 내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생각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앎이다. 그것이 나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넘어 나라는 존재를 구획짓는다. 즉, 내 언어가 나의 관념의 세상의 크기인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내 생각을 구체화시켜 나라는 사람의 세계를 넓힌다는 본래의 목적에, 글을 더 예쁘고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더해진다. 계속 글을 쓰고 싶고 더 많은 좋은 글을 찾아다니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신문을 읽고 책을 읽는다. 나의 세계를 넓히고, 내 관념의 범위를 확장시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