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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눈이 멀어도 역사는 멀지 않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

저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9-11-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면? 인간의 욕망의 끝을 파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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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세상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사실. 신문 한 켠에 작은 사진과 함께 적혀있는 한 글귀가 나의 뇌 세포의 더딘 움직임에 채찍질을 가해주었다.

 

인류역사는 철저히 눈이 보이는 사람을 정상인 취급하였고, 그들의 입장에서 역사가 기록되어 왔다. 그런데 만약,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시력을 잃어 새로운 인류 사회가 형성된다면. 그 때도 역사는 존재할까.

 

눈이 멀다. 중의적인 표현이다. 보이지 않음을 뜻하는 의미와 보이긴 보이지만 오로지 단 한 가지만 보인다는 의미. 보이지 않음과 보임을 전부 뜻하는 특이한 말이다.한 가지만 보인다는 것은, 초점이 한 가지에만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렇게 설명하면 조금 쉽겠다. 한가인에게 눈이 멀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이 눈이 멀었다. 이유는 모른다. 이윽고 그 사람과 접촉한 다른 사람이 눈이 멀었고, 처음 눈 먼 사람이 찾아간 안과의사도 피할 수 없이 눈이 멀었다. 그렇게 온 세상이 눈이 멀었다. 여기서 눈이 멀었다는 것은 첫 번째 의미인 시력을 잃었다는 말이다. 전염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은 정부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자들과 이 병의 보균자들을 폐건물로 이주시켰다. 다른 사람들에게 옮기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주장과 함께. 그렇게 그들은 폐건물에.갇혔다.

 

건물에 갇혀버린 눈먼 자들의 구역은 처음에 평화로웠으나, 사람이 점점 늘어나다보니 이곳에서도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진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권력을 탐하고, 성욕을 밝힌다. 인간이기에 인간성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랄까. 이 무리들 역시 규모와 장소만 다를 뿐, 필시 하나의 사회, 하나의 역사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앞이 보이지 않게 시력을 잃어버렸음에도, 그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무리에서도 식량을 무기 삼아 권력을 탐했던 자. 그 권력자 밑에서 그와 함께 권력을 탐했던 무리. 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권력과 성욕을 보았다. 시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은 보았다는 말이다. 권력을 보았기 때문에 다른 일반 무리들을 총, 무기, 식량으로써 폭력적으로 억압했고, 약자인 여성들을 성 노리개로 전락시켰다. 역사에도 숱하게 반복되어 온 그러한 상황 중 하나가 재현 된 것이다.

 

눈먼 자들의 무리 속에는 사실 앞이 보이는 한 여성이 있다. 안과의사의 부인. 그녀는 앞이 보인다. 앞이 보임에도 남편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사랑에 따라 왔을 뿐이다. 그런 그녀가 점점 심해지는 권력자들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체제를 전복시킬 계획을 꾸민다. 그리고 실행에 옮겨 권력자와 무리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탈출에 성공한다.

 

역사의 순환은 불변이다. 어느 한 왕조가 태동하면 언젠가는 멸망과 마주하기 마련이다.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진리. 태동과 멸망. 이것을 눈먼 자들의 무리도 빗겨나갈 수 없었다. 권력자가 등장하여 하나의 사회가 탄생하는가 싶더니 곧장 사회를 엎어버리는 무리가 등장했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는 이를 ‘~의 난, 혁명, 체제전복 등의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표현 방식만 다를 뿐 같은 성질의 것이다. 혁명은 이념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늘 날 우리 사회가 복지냐 성장이냐를 가지고 매일같이 싸우는 상황처럼. 대단하시고 높으신 우리 국회의원님들이 그러하시듯이.

하지만 역사는 말해준다. 성공한 혁명은 사회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끌어가게 될 것임을. 경제학을 본다면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고전학파, 신고전학파, 케인주의,신케인지언 등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주류 학설은 줄곧 교체된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켰다가 위기가 닥치면 다시금 정부가 필요하다고 아우성.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무한 반복. 이것이 역사인 것을. 어찌해볼 방도가 없다.

 

폭압을 일삼는 권력자에게서 탈출한 눈이 보이는 여자와 그 무리들. 폐건물에서 나와 사회와 마주하니, 작금의 현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 세상이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이제 눈이 보이는 것은 그녀 혼자다. 그녀는 무리를 이끌고 쉴 수 있는 집을 찾아 헤매고 홀로 음식을 찾아 나선다.

 

그녀의 무리는 이제, 새로운 환경과 맞딱뜨렸다. 분명 눈먼 자들의 무리가 모여 있었던 폐건물에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가 태동했었다. 잊지 말라. 역사는 어느 곳에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담과 하와, 단 둘만 살았을 그 머나먼 시절에도 역사가 있었기에 우리시대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폐건물에서 나온 그녀의 무리에서도 다시 규율과 사회가 생기기 시작한다. 헤어지지 않기위해 짝지어 손잡고 다니기. 소식(小食)하기. 순서대로 거주지 밖의 상황 살피기 등. 다시금 새로운 가치체계에 따라 시스템이 설계되고 운영되기 시작한다.

 

무리 구성원들은 새로운 사회가 갖추기 시작하자-역사가 증명하는 대로-개인적인 욕구를 실현시키고 싶어 한다. 작은 무리 안에서 새로운 사랑이 싹 터 인연이 탄생하는가 하면, 보이지 않지만 예쁜 것을 입고 싶어 하는 등의 본성이 스멀스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볼 수 없는 자들의 도시임에도 마치 볼 수 있는 자들의 도시라고, 보이는 자들의 도시라고 주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시 되는 인류사회로 바뀌었으니, 또 다시 새로운 규칙에 맞게 신() 인류사회가 설계되었다. 이전 사회와 현재 사회의 차이는 단 하나. 시력. 이것만 제한다면 인간은 모두 변화없이 그대로다. 배웠던 지식, 먹는 음식, 내가 사랑하는 사랑이 옆에 있는 사실, 내가 살던 집(단지 다른 사람들이 내 거처에 들어와 있겠지만). 모든 것은 불변이지만, 시력이란 변수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전 사회와는 조금 다른 사회로 성장할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사회는 다시금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를 맞이한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시력이 회복 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우리 인간의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마치 기원전 7000년 전 농업혁명, 18세기 산업혁명, 20세기 정보혁명이 갑자기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만약 내가 인간이 아닌 새로운 존재였다면, 이를 보고 뭐야, 매번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잖아?”라고 했을 것이다.

 

시력을 잃었던 모든 인류가 시력을 회복했다. 기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 동안 홀로 눈이 보였던 안과의사의 아내가 시력을 잃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시력을 회복한 상황에서 혼자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여자. 이제는 예전의 상황과 같은 상황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에서 눈이 보이는 비장애인과 시력을 잃은 장애인으로 이분법적 구분을 하는 상황. 이제 사회 시스템은 예전대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다. 혹은 더 발전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음과 교훈을 얻는 발전의 과정이니까.

 

인류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류의 구성원인 개인 자신의 역사도 존재할 터. 인류 사회의 역사가 그 나름대로 흘러가듯, 이제 그녀는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보였던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새로운 역사. 오히려 다른이들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들이 했던 실패와 고생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새로운 역사가 그녀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겪는 내적인 역사의 변화는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될 것이다. 모든 인류가 시력을 잃었을 때의 패러다임 전환이 인류의 것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인류는 정상이지만, 여자 한 명만이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수많은 내적 갈등을 경험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외로운 사투를 해야만 하는 모습이 상상될 것 같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 역() 톰 행크스가 생각나는 것은 나뿐일까.

눈먼자들의 도시를 관통하는 하나의 뼈대는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곳에도. 어떠한 상황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역사.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였듯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역사. 인류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역사라는 껌딱지와 항상 동행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듯하다. 다만 껌의 종류에 따라 색이 다른 것처럼, 역사도 주체가 되는 개인/국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오늘날 당신의 곁에는 어떠한 역사들이 자리잡고 있는가. 또 그 역사는 지금 바뀌어 가는 중인가? 아니면 얼마 전 급격하게 바뀐 역사인가.

 

주제 사라마구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전달하고자 한 교훈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역사가 사관의 입장에 따라 달리 기록되고 의미가 변하듯이, 이 소설도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고 다양한 교훈이 발견되는 것이다. 역사학자 E. H. Carr는 말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가 나누고 있는 대화이다”. 주제 사라마구가 혹시 위와 같은 나만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 변함이 없다. 이 역시 나만의 역사에 기초하여 책을 만난 까닭이다. 주제 사라마구 당신께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여러분도 당신의 역사가 어떻게 자신에게 발현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당신의 역사가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나갈지 궁금하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어보라. 읽는 도중에 혹은 다 읽고 난 이후에 다양한 의문과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해볼 수 있고, 가장 단편적으로 인간 시력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결론을 얻든지 간에 그것은 당신의 역사가 구현되어 교훈을 얻은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저 이 교훈에 감사하고 자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기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것이 오늘 날까지 역사가 생존해온 방식이며 앞으로도 나아갈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음으로 당신의 역사는 또 한 페이지 또 기록되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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