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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시드니> 캐논 변주곡


내 손에 검은 플라스틱 박스가 놓여있다. 노란 볶음밥과 돈까스 같은 돼지고기가 담겨있다. 딘타이펑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테이크 아웃 해왔다. 저 앞에는 오페라하우스가 보인다. 해는 서서히 넘어가고 있다. 아쉽게도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시드니다. 나는 오페라하우스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다. 동물원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낸 후 마지막으로 야경을 보러 이곳에 왔다. 야경을 즐기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마침 배가 출출했기 때문에 저녁 먹을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렸다.

한 벤치가 내 마음에 들었다. 앞에는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고, 내 바로 앞에는 거리의 악사가 기타를 치고 있다. 이 분위기가 묘하게 낭만적이다. 벤치에 앉아 가방에 들어있던 음식을 꺼냈다. 차갑게 식은 밥과 돼지고기. 왠지 맛없어 보인다. 사실, 딘타이펑은 일부러 찾아간 곳이었다. 시드니 맛집이라고 소문이 낫길래 가보자 마음 먹었다. 딤섬이 맛있단다. 볶음밥도 맛있단다. '맛있는 거 전부 다 먹어야지' 생각하며 두 개를 모두 주문했다. 분명히 블로그에서 딤섬의 육즙이 끝내준다고 했었다. 뭐, 맛은 있었다. 그러나 과연 맛집이 맞는걸까 의심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나랑은 잘 안맞나보다 생각하며 그냥 먹었다. 평소의 나는 많이 먹지 않는다. 배부른 느낌이 싫고 소화 능력도 별로여서 속이 더부룩할 때가 많다. 조금씩 자주 먹는걸 선호한다. 이번 점심도 어김없이 다 먹지 못했고, 옆 테이블 따라 남은 음식을 테이크 아웃 했던 것이다.

그 음식이 싸늘하게 식어 내 가방에 들어있었고, 지금 내 손에 놓여있다. 친절하게도 스푼과 티슈를 넣어주었다. '참 센스있네, 딘타이펑'. 스푼으로 볶음밥 한 숟갈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세상에나. 점심에 먹었던 것보다 맛있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거리의 악사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했다. 배고픔과 분위기가 밥 맛을 더욱 북돋는 것이 확실했다. 호주에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 그 어떤 분위기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좋았다.



관광객들이 내 앞을 끊임없이 왔다갔다한다. 대화 소리가 들린다. 주위에서는 갈매기가 울고 있다. 내 옆 커플은 무언가를 속삭인다. 이 모든 소리의 아래에 악사의 기타 선율이 흐르고 있다. 일과를 마친 이들에게 쉼을 주는 듯한 기타소리다. 편안하다. 나른하다. 이 순간의 안락함에 젖어버린다.

볶음밥과 돼지고기를 또 한 숟갈 먹는다.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든다. 리듬 타듯이. 기분이 좋은 것이다. 이 순간이, 지금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강하고 드센 그 어떤 요소도 없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상황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이 두드러지거나, 정신사납게 하는 무언가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딱 좋아하는 장면. 잔잔하고 부드러우며 포근하고 안락한 순간. 마치 캐논 변주곡 같은. 지금 내가 그 순간에 놓여있다.

맛있게 밥을 다 먹었다. 거리의 악사는 아직도 기타 연주를 한다. 맨 처음 들었던 캐논 변주곡이 다시 듣고 싶다. 요청드릴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내 생각을 접는다.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드리는 것도 꽤나 낭만적일거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방을 뒤적거린다. 까만 동전지갑을 찾아냈다. 동전 몇 개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벤치를 정리하고 가방을 맸다. 한 걸음 내디뎠다. 가벼운 발거음이다. 악사에게 다가갔다. 몸을 숙여 동전 몇개를 그의 기타 박스에 넣었다. 동전과 지폐가 꽤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악사에게 감사를 표했군'. 나는 몸을 일으키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의 식사를 로맨틱하게 만들어준 것에 대한 작은 표시이다. 악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고개를 까닥거린다. 감사의 표시일거라 나는 생각한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표한 감사가 되려 나를 미소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