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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멜버른> 소박함이 주는 기쁨



소박함이 주는 기쁨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을 때 특히 그렇다. 

오늘은 멜버른을 떠나 시드니로 가야한다. 아침일찍 나는 이곳에 왔다. 사실 지금 이 시간에 갈 만한 곳이 없었다. 저녁 6시 비행기로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전과 오후에 시간 여유가 있다. 전날 현지 워홀러에게서 세인트킬다가 꽤 예쁘다는 말을 들었고, 계획이 없던 나는 즉흥적으로 이곳에 오게 됐다.

전날까지 현지 교통카드 없이 돌아다녔다. 그만큼 교통편이 편리했다. 관광지가 가까이 몰려있는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무료 트램 체계 덕분이었지만... 교통카드를 사기위해 카드 발매기에 돈을 넣었다. 아뿔싸. 내 계획보다 많은 금액이 충전해버렸다. "아, 왠지 출발이 좋지 않아"

20분간 트램을 타고 나서야 세인트킬다에 도착했다. 푸른바다와 모래사장이 반겨주었다. 날씨도 맑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호주의 최고 장점은 날씨라고 생각한다. 오늘 흐려도 내일은 맑아질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깨끗한 하늘을 쉽게 볼 수 있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뿌연 하늘만 바라보는 대한민국과 달리.

세인트킬다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어떤 곳일지 예상할 수 없었다. 단지 해변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곳은 바다, 모래사장, 요트,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멜버른 시내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여유있는 풍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여유로운 삶이 가능할까. 우리나라와 호주를 잠깐 비교해본다.

해변이라그런지 바람이 끊임없이 분다. 계속 분다. 머리카락이 속절없이 휘날린다. 바람이 멈추었을 때, 나는 손을 올려 머리를 만진다. 머리카락을 우측으로 쓸어 넘긴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바람에 떡진 머리카락이 느껴진다. 이 감각을 잘 안다. 덩어리진 푸석한 머리카락 무리들. 해변인지라 미세한 모래 입자가 실려 왔을 것이다. 그 입자들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스며들이 머리카락을 푸석푸석하게 만들었다. 머리 정돈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람이 분다. 바람이 야속하다. 나는 다시 머리 모양새를 다듬는다. 로봇처럼 정해진 순서로 머리를 다듬는다. 거울이 없어도 대충 어떤 모양일지 머리에 그려진다. 얄미운 바람은 나랑 싸우자는 듯이 또 불어온다. 살짝 짜증이 올라온다. '하, 그래 네가 이겼다.' 나는 머리 다듬기를 포기한채 계속 걷는다.



방파제쪽으로 걸어갔다. 다수의 요트가 정박해 있었고 멜버른의 스카이라인이 어렴풋하게 보일 것 같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셀카 찍기에 좋은 장소라는 사실은 덤이다. 햇빛이 쨍쨍하고 풍경이 예쁘다보니 셀카 배경으로는 제격이다. 주인공이 배경에 어울리지 않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셀카를 주구장창 찍는다. 많이 찍어서 잘 나온 사진 하나 건질거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찰칵하는 소리는 나와 떨어질줄 모른다.

좋은 풍경에 날씨마저 적당하니, 흥겹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 않았으면 멜버른에 대한 좋은 기억 하나를 갖지 못할 뻔했다. '좋은 기억 하나'는 이 풍경의 아름다움을 축소하는 것이 될 것 같다. 입이 떡 벌어지는 아름다움은 아니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요소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조용하면서 꾸미지 않은 소박함을 드러낸다. 자연과 도시문명의 절묘한 조화를 품은채 말이다. 멜버른을 떠나기전 마지막 여행지로 제격일 것 같다.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이제는 들어온 길을 기분좋게 나갈일만 남았다. 뿌듯함과 만족감에 미소 짓는다. 그때 길 위에 어떤 남자가 보였다. 방파제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궁금했다. '뭘까?'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다. 무언가 있다. 파란 털을 가진 조그만 펭귄이다. 세인트킬다에서 펭귄을 볼수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였던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작은 즐거움이 하나 더 찾아왔다.



"펭귄아 이쪽 좀 봐봐" 작게 소리쳤다.

듣는 시늉조차 안한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날개를 파닥이며 앞뒤로 휘젓는다. 추위를 이겨내려는 움직임인 것 같다. 이후에도 계속 펭귄은 추위와의 싸움만 벌였다. 나는 펭귄에게 눈길을 받을 수 없었다.


(이때 펭귄의 모습을 짧은 영상으로 올려놨습니다. https://youtu.be/DJv4cV16Tb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