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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 두 미치광이의 폭주



위플래쉬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온라인 상에서의 칭찬 세례. <위플래쉬>를 보게 된 이유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4~5점을 매긴 영화들을 신뢰하는 편이다. 사실 그를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TV에서 몇 번 보았고, 지적인 매력에 호감을 갖고 있던 분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른 영화평론가보다 여러 번 보게 된 이유로, 나도 모르게 친숙한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분이 매긴 별점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다소간의 영향을 미친다.

<위플래쉬>를 두 번 보았다. 4500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서 소장했다. 일부러 좀 기다렸다. 가격이 어느정도 떨어지기를. 오랜만에 본 명작이었다. <소셜네트워크>에 버금가는 긴장감과 흡입력. 배우들의 열연(특히 J.K 시몬스의 연기력은 잊히지 않는다.). 긴장감있는 스토리와 긴박한 화면 전환.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진 영화였다. 근 8개월간 보았던 영화중 최고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처음 볼 때는 긴장감과 흡입력에 몰입되었다. 보고 나니, 배우들 표정과 대사의 속 뜻이 궁금해졌다. 미묘한 얼굴 표정의 변화, 작은 제스처들이 상징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개개인이 느끼는 영화에 대한 평가로 귀결될 것이다. 보다 영화를 잘 이애하고 싶어서 한번 더 보았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왜 앤드류가 화를 냈는지, 미치도록 연습했는지. 끝까지 드럼 스틱을 붙잡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보여준 I'll cue you까지. 또한 왜 플랫처가 그렇게 앤드류를 몰아세웠는지 알 수 있었다. 한계를 뛰어넘는 걸 보고싶다는 번지르르한 말의 의미도 조금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이 영화의 묘미는 누구나 공감하듯, 마지막 10분이다. 한 미치광이의 폭주와 한 미치광이의 희열이 펼쳐지는 시간. 두 미치광이의 교감은 플렛처의 도발로 시작된다. "I know it was you" 널 자극하겠다라는 저의가 담긴 한 마디. 이 말은 앤드류에게 정신적 충격을 안겼다. 폭주의 서막.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예전처럼 그에게 또 한 방 맞았기 때문이다. 미치광이 지휘자는 자존심을 짓밟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짓밟히고 나서야 더 분발해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플렛처는 카운터를 날린다. 연주곡을 바꿨다. 말해주었던 재즈곡이 아니다. 혼란에 빠진 앤드류. 이내 비틀비틀 거리다가 지휘자의 한 마디에 직격탄을 맞는다. "You are done"

그런데 사실, 넌 끝이야라는 이 말은 카운터가 아니다. 상대의 극한 능력을 끌어내기 위한 자극의 최종 단계였다. 비몽사몽하던 앤드류가 이윽고 복수를 시작하려 꿈틀댄다.

사람은 누구나 미칠 수 있다. 다만 평상시에는 평점심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 고삐가 풀리는 순간, 우리는 광인(狂人)이 되고 만다.

미치광이 드러머(앤드류)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복수심, 무너져 내린 자존심, 위대한 드러머가 되고자한 이상의 좌절이 그를 폭주하게 만들었다. 그는 분노 표출의 방법으로 미친듯한 드럼 연주를 택했다. 이윽고 앤드류가 지휘자에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I'll cue you"

이 대목이 영화의 최고 클라이막스다. I'll cue you를 들은 지휘자는 화가 나야 한다. 무대 위에서 지휘자를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렛처는 서서히 미소를 짓는다.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드디어 실현시켰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극의 경지에 다다른 제자가 눈 앞에 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휘자로서 꿈꾸던 일이 눈앞에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네가 나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든, 내 무대를 망쳐놓든 상관없다. 미치광이 지휘자는 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 

한계를 넘어선 드러머의 극한의 연주와 그 폭주를 리드하는 희열에 찬 지휘자. 

플렛처의 단호한 얼굴 속드리운 미소는 음악에 몰입된 무아의 경지를 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미치광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연주에 몰입한다. 그리곤 둘 모두 웃는다. 슬며시 그리고 서서히. 두 미치광이는 형용할 수 없는 희열에 다다른 것이다. 지휘가로서, 드러머로서. 서로를 보며 살짝 웃는 미소는 두 미치광이가 합일되었다는 일종의 상징과 같다.



위플래쉬를 한 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지 않을까.

"극한에 다다른 드러머의 미친 연주와 그 폭주를 리드한 희열의 지휘자"




위플래쉬 (2015)

Whiplash 
8.4
감독
데미언 차젤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폴 라이저, 멜리사 비노이스트, 오스틴 스토웰
정보
드라마 | 미국 | 106 분 | 2015-03-12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