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저자: 요슈타인 가아더, 출판사: 현암사)
그렇게 싫었다. 고등학교 시절 억지로 배워야만 했던 윤리. 대학교 진학을 위해 사회탐구 영역을 공부해야만 했었고, 나는 학교에서 정해준 과목만을 공부해야만 했었다. 윤리와 사상은 그 과목 중 하나였다.
나에게 윤리학은 단지 암기과목에 지나지 않았다. 지문을 읽어도 이게 단최 무슨말이고를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이건 서양철학이건. 나에겐 의미없는 외침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내가 대학에 진학하고,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경제신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떤 생각이라고 구체적으로 콕! 찝을 수는 없다. 온갖 잡다한 생각을 전부 포괄하니... 그렇다고 부질없는 생각이 전부였던 것은 아니다(상당부분은 부질없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를일이지만). 꺠나 쓸모있는, 나름 진지한 생각도 했더랬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에, 철학을 알아야겠다고 문득 깨달았다. 많은 부분이 철학적 사고를 필요로 했고, 글을 쓰건 말을 하건, 기본 바탕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요놈, 철학이었다. 언어를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감초역할도 한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고등학교 때, 시험이라는 제도 아래에서 철학이라는 대상에 질려버렸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때처럼 시험을 위한 공부, 암기를 통한 이해가 반복되어서는 안되었다. 다시 한 번 오래지않아 그만두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으며, 내 자신에게 좋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못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고 봐야했기에 기초를 알려줄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흐름을 잡고 기초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선생 말이다. 그러던 중 온라인 검색으로 발견한 책이 <소피의 세계>. 대화를 통해 철학의 기초지식을 전달해주고 있으며, 비교적 알기 쉽게 만들었다(뭐, 칸트 등 몇몇 어려운 철학자들은, 이 책마저도 참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책을 읽기 전에 지레 겁먹을 만한 두께. 그렇지만 읽다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닌 듯싶다. 나폴레옹도 알프스 산맥을 넘었는 걸. 철학자 한 명 한 명 읽다보니, 어느새 정상을 지나치고 하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철학이라는 비교적 따분한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서 써주어 더욱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철학의 입문서요, 마중물이 되어 주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평가한다. <소피의 세계>를 읽고서 "아, 철학을 다 이해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터. <소피의 세계>를 읽는 것은, 어머니 배에서 이제 막 밖으로 나온 신생아가 된 것이 비교할 수 있다. 이제 험난 한, 때로는 재밌는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돌연변이 신생아다. 어느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어떤 장래희망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는 신생아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신생아는 자기가 무엇이 될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는 다른 신생아다) 그렇다. 나는 언어철학과 기호학에 흥미를 갖고 있는 신생아다.
"엄마, 분유대신 비트겐슈타인을, 낮잠 대신 움베르트 에코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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