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사: 문학사상)
한 권의 책을 다 읽고서 맨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나에게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정리되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 기분이 싫었다. 뭔가 일을 했는데 뿌듯한 성취가 없는 것 같은 그런 애매모호함. 성취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뭔가 했는데 하지 않은 듯한 것이 싫어서 책 읽는 방법을 바꾸었다. 조금 느리게 읽더라도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면서 읽는 쪽으로 선회했다. 책을 읽고 나면-지금 이렇게 적고 있는 것처럼-나름의 정리를 하기도 한다. 이러면서 차츰 완결 짓는 것 같은 뿌듯함, 성취감이 새겼다.
조금 어려운 책의 경우에는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 도대체 이 작가는 무슨 말을 하는지, 내 수준으로 당최 이해를 못하겠다. 곰곰이 생각해도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흔히들 추천하듯이 두 세번 다시 읽어보았다. 그래도 모르겠다. 요즈음 이런 일이 조금씩 잦아지고 있다. 어려운 책들도 읽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면 정말 답답하다. 천천히 읽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늦어지는데, 책의 내용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글씨를 읽어내는 듯한 느낌. 되게 허무하고 한편으로 비참하기까지 하다. 아시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깨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글을 보았다. 그분이 말하시길, 이해되지 않는 책 등은 가볍게 넘긴다고 하셨다. 세상에 책은 많고 앞으로 읽어야 할 책도 많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 것인데, 책과의 인연이 닿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는 자세가 마음에 와 닿았다. 책을 읽어내지 못했다고 슬퍼하며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출발한 나의 여정이 종착지에 다다랐을 때, 즐거웠다고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끝나면 안되지 않을까...
나와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다음 책을 꺼낼 수 있는 여유.
<해변의 카프카>가 나에게 준 메세지다.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내 스스로 시사점을 찾았으니 나쁘지는 않다. 좀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책을 읽고서 소득 없이 독서했다는 실망감에 젖어있었는데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니까.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는 아니었지만, 책이기에 얻을 수 있었던 여유라는 녀석을 마음에 새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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